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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On The G String, 루이틀비루이

LN 2017. 9. 19. 21:09

 

 

루이틀비루이

사망소재 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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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r On The G String

For. 한비 님

 

 

 

 

 

 

 

 

 

루이스, 너는 언젠가 모두가 예상한 그대로 죽게 될 거야.

나도 알아.

난 네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지만, 나로서는 바꿀 수 없는 일이겠지.

괜찮아.

괜찮지 않다고 솔직히 말하는 날도 오지 않는 걸까?

아마도 그렇겠지.

그러면,

어쩔 수 없지, 하고 너는 웃었다. 둘이서 차를 마시며, 오랜만에 느긋한 날에 했던 말이었다. 이 거리에서 유일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네 취향에 조금이나마 맞는 카페, 커피와 홍차, 네 앞에 놓인 커피가 조금씩 식어갈 무렵이었다. 데이트라면 데이트일지도 모르는 그런 날이었다. 남들은 알 수 없는 너와 나만의 시간이기도 했다. 서로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 우리만이 이해하고 온전히 가질 수 있는 그런 시간, 공기라고 해도 좋을까. 네가 내 앞에 앉아 있고 커피 향과 홍차 향이 뒤섞여 흘러가는 그런 고요한 정적이 좋았다. 무슨 말을 꺼내더라도 앞과 뒤의 설명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너뿐이었다. 그렇기에 할 수 있는 대화였다. 그런 말에도 웃을 수 있는 것 역시 너밖에 없었으니까.

트리비아, 그러면 너는 내가 죽으면, 어떻게 할 거야? 묻지는 않았다. 잔의 가장자리에 남은 네 붉은 립스틱 자국이 예뻐서.

 

"루이스, 너무 무모해. 그건 구하는 게 아니라 자살에 불과하다고."

"그래도 가야 돼. 가지 않으면 난 여기서 뭘 하란 거야?"

"네가 할 일 따위는 넘쳐나게 많잖아! 이미 늦었어, 네가 갈 때까지 버틸 수도 없을 거야. 그만둬."

"이글, 괜찮아."

"루이스!"

"괜찮아."

 

결정 레일이 빠르게 깔렸다. 쓸데없는 언쟁을 할 시간에 그냥 뛰쳐나오는 게 나았을 텐데. 이글은 분명 내 욕을 하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도 않을 것이었다. 홀든의 망나니라고 불리는 그를 의지하는 이유도 그것이었다. 레일을 깔 만한 결정이 돌아오면 곧바로 다시 깔아 몇 명의 발목이 붙들려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나오지 못한 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말하면 이글은, 너는 단 한 명이 붙잡혀 있어도 갔을 거잖아, 대답하겠지. 조금 웃었다.

능력자 전쟁은 남 일이 아니었다.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안일히 생각했던 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돌연 아무 예고도 없이 안타리우스의 기습으로 시작됐다. 회사의 능력자들과 안타리우스의 클론이 대치했고, 이 과정에서 연합의 능력자가 부상을 당해 그냥 있을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되었다. 애초에 안타리우스는 공공의 적 비스무리한 존재였으나 그렇다고 회사와 선뜻 손을 잡기란 단시간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지만, 회사와 연합에는 해당하지 않는 말인 듯했다. 각 수장끼리의 교섭이 결렬되었으니 삼파전, 혹은 제3세력까지도 참가하여 죽고 죽이는 혼전이 될 가능성도 없지는 않았다. 레베카가 정찰을 나갔다가 회사에 발각되어 싸움이 붙었고 이를 휴톤과 나이오비, 레이튼, 토마스가 지원하러 간 것이 바로 몇 시간 전이었다. 회사도 지원인력이 왔을 테고, 그렇게 대규모로 싸운다면 안타리우스에서 냄새 맡지 못할 리가 없었다. 이미 시간이 많이 지나 모두 멀쩡한 상태는 아니겠지만 더 커지기 전에 후퇴해야 함은 자명했다. 안타리우스가 이렇게 서둘러 습격을 단행한 의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라는 앤지의 말도 있었으나 희생자가 생긴 뒤라면 연합이 함정에 빠지지 않고 무사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제 몸 하나 건사했다며 안도할 수 있을까.

영웅님이니까, 그렇지? 트리비아가 그렇게 말할 것만 같았다. 아직도 그 수식어에 얽매여 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해도 단 한 사람도 죽게 둘 수는 없었다. 그것만이 존재 이유라고 해도 좋을 만큼 당연했으므로.

현장은 참혹했다. 여기저기 피 웅덩이가 있고, 주변 건물은 다 부서졌고, 어느 쪽이나 부상과 떨어지는 체력에 허덕였지만 물러날 생각은 없어 보였다. 빠르게 아군의 위치를 파악한 뒤 주저앉은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이오비에게 향하는 창을 막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토마스랑 연습을 더 할 걸 그랬다.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어깨를 꿰뚫은 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얼른 후퇴해, 내가 막을 테니까."

"루이, , ... 뭐 하러 왔어? 바보야?"

"내가 올 거라는 건 당신이라면 알고 있었을 거면서."

"아니라고는 못 하겠지만... 막는 건 무리야, 너도 빠져."

"괜찮아, 전원 후퇴시키면 나도 피할 테니까."

"... 알았어."

 

나이오비가 안전한 곳으로 가는 것이 확인될 때까지 투구를 쓴 회사의 능력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영 쓸모없는 수식어는 아니었던 모양인지, 섣불리 내게 창을 들이미는 일은 없었다. 이대로 설득이라도 해 볼까 싶었지만, 근처에서 토마스의 목소리가 들렸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결정 레일을 깔았고, 무어라 작은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뒤 따위는 보지도 않았다. 결정 조각이 군데군데 흩어진 바닥에 넘어진 토마스의 눈앞에 검이 겨누어져 있었다. 그 앞을 막아서며, 눈짓을 보냈다. 급한 상황임을 모를 리가 없는 토마스가 군말 없이 퇴각한 것을 보고서야 앞에 선 남자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 홀든. 지금은 이럴 때가 아닙니다."

"연합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도 우선은 안타리우스가 먼저잖습니까."

"말이 많군, 영웅. 동료를 위해 발을 묶으러 왔다면 그에 맞는 각오가 필요할 것이다."

"제 동료는 아무도, 절대 죽게 하지 않을 겁니다."

"더 말이 필요하진 않겠지."

 

검의 끄트머리가 이쪽을 노리고 있었다. 대응하지 못할 정도도 아니었으나, 아직 모두를 후퇴시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부상이 심할 텐데 어떻게 버티고들 있는 걸까. 무사히 돌아가야 할 텐데. 첫 일격을 읽어내야 하건만 집중이 되지 않았다. 순간 저 멀리 맞은편에서 유성이 떨어졌다. 타라, 어쩐지 여기저기서 무언가 타는 냄새가 나더니 그녀도 이곳에 지원을 온 것임을 이제서야 알아챘다. 아마 그녀라면 다른 이보다 나를 우선시하겠지.

시선이 다이무스의 뒤로 향하자마자 검이 움직였다. 어깨의 상태가 썩 좋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샤드리볼버를 한 번 쏜 뒤 손에서 냉기를 이끌어냈다.

 

"레이튼, 레베카, 휴톤!"

 

다만 한 번의 부름이었지만 내가 여기서 부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모를 사람들이 아니었다. 동시에 그것은 타라를 부르는 외침이기도 했다. 냉기와는 전혀 다른, 불꽃이 다가오는 그 손에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어머, 루이스, 오랜만이네. 여전히 눈물겹고."

"... 그만, 이제 우릴 보내줘."

"순진하긴. 루이스, 이건 전쟁이야. 그냥 싸움이 아니고. 전쟁에 보내주는 게 있겠어? 죽는지 죽이는지, 둘 중 하나밖에 없어."

"나로는 부족해?"

"이게 정말 그 영웅이 맞나 모르겠네. 누구 좋으라고 이런 뻔한 발 묶기에 당해줘?"

"나를 죽이는 게 더 이득일 텐데."

", 또 여왕님을 부르시려고?"

"트리비아는 안 와."

"그럼 정말 죽으러 기어 들어온 거야?"

 

트리비아는 이런 바보 같은 일엔 관심 없지. 그렇다고 내가 간다는 걸 막지도 않을 거고. 그녀는 그냥, 바보 같은 나를 지켜볼 뿐이야.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이만하면 충분하진 않아도 시간을 벌었으니, 남은 것은 있는 힘껏 발버둥치는 것뿐이었다. 냉기와 결정을 모두 끌어올려 주변 어느 정도를 얼렸지만 그렇게 쉽게 맞아줄 이들이 아님은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솟아오른 얼음들 밖에서 그들의 시선이 닿아왔다. 로라스, 이쪽이야.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을 때 겨우 알아챘다. 이미 머리 위에서 노려지고 있었음을. 검룡이 빠르게 낙하했다. 눈으로 좇은 것은 고작 거기까지였다.

어깨를 뚫었던 창이 이번에는 명치와 가슴 언저리에 있었다. 몸을 관통한 그것이 바닥에까지 꽂혀 있어 움직이기도 어려웠다. 펼쳤던 얼음들이 녹아 핏물에 섞여 흘러내려가는 게 어렴풋이 보였다. 들어 올린 손이 떨렸다. 결정이 툭툭 떨어지고 있었다. 결정사에게서 떨어져나가는 결정은 나조차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이 능력을 좋아하진 않았지만 이 능력이었기에 할 수 있는 것도 많았는데. 숨을 쉬기가 어려워 호흡이 입술에서 걸려 흩어졌다. 적은 즉사라고 생각해 돌아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다들 잘 피해 돌아갔다면 좋을 텐데.

미지근한 피에 피부에 붙어 있던 결정이 조금씩 녹아갔다. 항상 몸을 뒤덮고 있던 것들, 몸을 구성하는 일부와도 같았던 것들이었다. 그것은 웃기지도 않은 수식어 역시 마찬가지였다.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닌 것을 짊어지고 분수에 맞지도 않는 책임을 다 지려고 했으니, 그것을 버릴 때 내 것이었던 것마저 잃는 일은 당연한 이치였다. 그래도 이만하면 싸게 먹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말하면 너는 뭐라고 대답해 줄까, 트리비아.

네 손을 잡고 밤하늘을 날아갔던 날이 있었다. 밤바람, 부드러운 네 손, 어쩌면 신보다도 더 자애롭게 네 멍청한 연인을 바라봐주었던 눈, 내 몸 하나만큼의 무게로 지상에 붙잡혀 있는 날개. 나 같은 사람에게 붙들려준 네가 고마우면서 미안했다. 너는 네가 가고 싶은 곳이 있었을 텐데도. 그래도 차마 이런 사람을 두고 가기에는 네게 너무 모자랐던 거겠지. 이제 너를 놓아줄 때가 되었으니 다시 한 번만 너와 함께 의미도 없이 지상을 부유해보고 싶었다.

미안해, 무겁지.

자기가 무거운 게 하루 이틀이야?

너무 무거워서 네가 불편할 것 같아서.

그럼 좀 가벼워져 봐. 다 버리고 오라고.

못 한다는 거 알면서 일부러 그러는 거야?

네가 전부 버리거나, 내가 널 버리는 수밖에 없어.

괜찮아. 난 네 그런 점이 좋아.

루이스,

나도 네 그런 점을 좋아했어. 어쩔 도리 없이 바보 같은 점이. 이런 상황인데도 왜인지 웃음이 났다. 그 약간 모자란 듯한,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를 보던 네 얼굴이 아직도 선했다. 남아 있던 물건은 피투성이에 구멍까지 난 후드 한 벌로 끝이었다. 늘 차갑고 결정이 서려 있던 그 후드가 아닌 것만 같았다. 구두 굽 소리가 천천히 걸어 바깥의 덜 진화된 불길 앞으로 향했다. 남겨두어도 아무도 챙기거나 가지고 갈 사람이 없는 물건은 차라리 네게 도로 보내주는 게 낫겠지.

옷자락에 붙은 불이 순식간에 모자 부분까지 번져갔다. 불길 속에 후드를 툭 내려놓고서, 주머니 안쪽에 있던 것도 꺼내 그 위로 떨어뜨렸다. 얇은 종이 한 장, 둘이서 제대로 카메라를 본 게 아니라 어디선가 기자에게 찍혔던, 거리를 나란히 걷는 모습이 찍힌 사진이었다. 그게 언제였더라. 오랜만에 시간을 내서 차를 마시러 갔던 날이었던 것 같은데. 너와 하고 싶은 일은 무언가를 바꾼다거나, 너를 변화시키거나, 변화되거나, 그런 게 아니었다. 다만, 한 번쯤은 네가 괜찮지 않다고 울면서 무너지는 모습도 궁금했을 뿐이었다. 사진이 가장자리부터 타들어가 까맣게 구겨졌다. 붙잡고 있던 것도 사라졌으니, 이제는 어디로 갈까. 가능하면 너를 닮은 사람이 없는 곳이 좋겠어. 너처럼 미련하지 않고 바보 같지 않은 그런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이번에는 누구에게도 붙잡히지 않도록.

네가 놓아준 손이니 그건 앞으로도 네 거야, 루이스.

달빛이 환한 밤이었다. 너를 버린 하늘이 구름 없이 맑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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