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탈선, 벨져루드

LN 2018. 1. 29. 21:21

 

벨져루드

적대세력 둘이서 다정하게 연애함

 

더보기

 

긴 속눈썹이 드리운 푸른 눈동자가 눈앞에 자세를 낮춘 남자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것이 경멸인지, 불쾌인지, 욕망인지는 그 상대밖엔 알 길이 없을 것이었다. 그는 등받이에 깊이 등을 묻고 앉아, 제 책상에 건방지게 걸터앉은 채 위험한 것을 혀로 감아내는 남자의 모습이 꽤 볼만한 구경거리라고 생각했다. 피처럼 붉은 혀가 금방이라도 이것을 다 삼키고 저마저 삼키려 들 것만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는 그런 짐승같은 것을 마다하진 않았다.

적에게 발정하는 상대라니, 우습고 귀엽지 않은가.

그 꼴에 욕정하는 사람도 똑같은 처지지만, 아래로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서 천천히 손에 쥔 것을 밀어넣었다가 당기기를 반복했다. 츕, 신체적인 접촉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하건만 외설스러운 소리가 삭막한 방 안을 울린다. 남자의 좁고 습한 입 안으로 검은 권총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광경이란, 또 그것을 소중히 감싸 물고 있는 붉은 입술과 혀는 어떤가, 잿빛으로 빛나는 남자의 시선이 제게 향하는 것을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남자는 종종 저더러 그의 얼굴이 취향인 거냐고 비웃음 섞인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남자 역시도 제게 취향 운운하며 웃을 여유는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이 얼굴에 욕정하며 고작 그 소유인 총기 따위를 빨고 있는데도 이미 아래가 팽팽하게 서 있으니.

루드비히, 이제는 이것도 익숙한 듯하군.

남자가 제게 곧잘 하듯 저도 조소를 띠었으나 조롱의 성과는 크지 않았다. 남자는 그저 그것만이 그의 할 일인 것처럼 총신을 길게 핥아내고, 도발하듯 저를 보고 눈만으로 웃었을 뿐이었다. 그건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고작 그 따위 도발에 지금 당장 저 입에 넣는 것을 바꾸고 싶어졌다는 것을 이 남자가 알면 당신은 내가 그렇게 좋아서 어쩌냐고 또 얄미운 소리를 해대겠지. 그래도 아랑곳하지 않고 원하는 만큼 욕망을 풀어내고 싶은 게 지금의 그였고, 그런 스스로가 낯설면서도 곧 닥칠 행위에 벌써부터 기대로 입꼬리가 올라갔다.

당신도 참, 안 그런 얼굴 하고서 어지간히 밝히네요.

역시 내가 너무 좋아서 그럽니까? 권총을 물고서도 입을 잘만 놀리는 남자가 쪽, 총구에 입술을 눌렀다가 젖은 소리를 내며 떼었다. 타액으로 축축히 젖은 총신을 바라보던 그는 이제 그것에 볼 일 따위는 없다는 듯 쥐고 있던 권총을 미련 없이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소리가 무슨 신호나 되는 양,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입술이 마주 붙었다. 허리를 끌어당겨 안는 손아귀 힘이 우악스러웠다.

이 사랑스러운 짐승을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내게 그를 가지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설령 그는 그렇게 생각지 않더라도.

 

 

 

'C'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할 수 없도록, 벨져루드  (0) 2018.02.15
사랑하지 않도록, 벨져루드  (0) 2018.02.01
오랜 밤, 클잭  (0) 2017.11.14
Air On The G String, 루이틀비루이  (0) 2017.09.19
Requiem, 제키루드, 커미션  (0) 2017.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