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사랑할 수 없도록, 벨져루드

LN 2018. 2. 15. 02:40

 

벨져루드 오메가버스 기반

이전 벨룯글과 이어짐

 

더보기

 

처음 만난 것은 어디에나 있는 흔한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있을 때였다. 대화는 그리 길지 않았다. 시선만이 오래도록 늘어졌을 뿐이었다. 아무 의도도 없이 그저 돌아보다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냥 느낌이 그랬다. 그런 것을 스스로가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새로운 사실이었으나 그조차도 아무 위화감 없이 받아들였다. 진부한 표현으로 묘사하자면, 그만큼 강하게 끌렸다.

같은 형질인데도 몸은 무서울 정도로 잘 맞았다. 그의 향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다. 마치 오메가인 양. 그래봐야 커피가 식기 전에 헤어지리라고 여겼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첫 관계는 두 잔의 커피가 다 식어빠지고 한겨울에 바깥에 내놓은 것처럼 차가워질 때까지도 끝나지 않았다. 둘 다 탈력해 숨을 헐떡이며 그 다음 날의 아침 해를 함께 보았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곳을 나서 성큼성큼 걸었다. 조금이라도 늦추거나 돌아보기라도 하면 모든 것이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어차피 서로의 사회적 입장은 둘이 만났을 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없는 처지에 놓여 있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수렁으로 떨어지는 일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가 물을 것이었다.

그게 두렵나?

거기에 할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두렵습니다.

저답지 않은 판단임을 알았다. 그러나 부딪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를 위해서라는,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순진한 의도가 아니었다. 제 자신이 너무 많은 위험에 노출되는 사태를 피하고 싶었다. 사실, 그조차도 저답지는 않았다.

이름을 알려준 것은 순전한 변덕이었다. 말해줄 생각 따위 요만큼도 없었는데, 피하지도 않고 똑바로 마주해 오는 당돌한 시선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엇을 숨기거나 거짓으로 말하는 것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졌다. 아무것도 거리낄 것 없는 사람의 눈, 그럴 수 있는 힘을 가진 시선이란.

벨져 홀든, 홀든 가의 차남, 부족함 없이 자란 오만한 도련님. 게다가 생각보다 어리고. 재미는 있었다. 귀한 집 도련님이 아마 평생 만날 일 없었을 사람과 함께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살을 섞는다니, 조금은 우스웠다. 부잣집 도련님의 유희도 참 가지가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의외로 조금은 진지했고, 한 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관계는 다음을 기약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 날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만나왔다. 그러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언젠가는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사냥꾼의 감이 이런 곳에서까지 적중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스스로 재촉하듯 걷던 걸음이 멈췄다. 두고 온 것이 있었다. 가지러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되돌아갔다가는 남은 것마저 전부 줘 버릴 것 같았다. 차라리 그러고 싶었다. 함께 절망으로 나아가는 멍청한 선택을 하고 싶었다.

벨져, 왜 나를 잡았습니까?
네가 나를 잡았으니까.

처음으로 만나고 말았던 순간을, 그가 듣지 못하도록 소리를 죽여 감정을 누설했던 때를 후회했다. 후회하면서도 걷는 수밖에 없었다. 어두운 밤 밑바닥에는 달빛도 닿지 않았다.

 

 

 

 

'C' 카테고리의 다른 글

메시아, 제키루드  (0) 2018.05.30
그러나 사랑해버렸음을, 벨져루드  (0) 2018.05.01
사랑하지 않도록, 벨져루드  (0) 2018.02.01
탈선, 벨져루드  (0) 2018.01.29
오랜 밤, 클잭  (0) 2017.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