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었다. 끝까지 간 축음기의 바늘을 처음으로 돌려놓는 것 같은, 그런 순간에 네 입에 오르는 말이었다.
"뜨거우니까 조심해."
차를 담은 잔을 네 앞에 놓아주며 쓸쓸한 정적에 한 마디를 얹었다. 네게 내려앉아 있던 침묵에 물결이 일고 네 눈길이 느리게 미끄러져 찻잔에 닿았다. 그것을 바라보다가 네 맞은편에 앉았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찰나였다. 너를 만나지 못하는 것보다는 좋았고, 너와 이야기를 이어갈 수 없다는 것에는 절망했다. 그러니까 딱 그 사이 어디쯤에 있었다. 다만 너에게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은 마음만은 네가 매 순간을 반복하듯 처음 그대로인 채였다.
"음, 그러니까... 이게 무슨 차라고 했지?"
"맞춰보지 그래?"
알려주는 것은 간단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네가 떠올려 주었으면 했다. 작게, 짓궂게 보일 수도 있는 웃음을 지으며 내 앞에 놓인 잔으로 시선을 내렸다. 네가 무슨 표정을 하고 있는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본래 너는 잘 모르는 것이 있어도 습관처럼 웃었으나, 지금의 너는 그 습관마저 잊었다. 그러니 네 얼굴에 떠오를 표정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하얀 의문밖에 없었다.
너의 모든 것을 사랑했다. 그래서 그것이 슬펐다.
"향이 좋네. ... 네가 내린 차는 항상 그랬잖아."
네 말에서 자신이 없음을 느꼈다. 너도 너의 기억에 구멍이 뚫리고 어쩌면 새 것처럼 그저 아무것도 없음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너의 문장 사이에 생긴 공백은 낯설지 않았다. 네가 내 이름을 잊은 것은 이 순간까지 모두 스무 번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숫자가 줄어들거나 멈출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게 유일히 확실했다.
차 향이 아른거리는 네 입술에 입술을 겹치고 이름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너무 지쳐 있었고, 너로 인한 상처가 이제는 두려웠다. 그것은 꼭 너를 사랑하는 만큼이었다.
"..."
"클리브?"
"... 아, 부르셨습니까? ... 아니, 이런, 제가 딴 생각을 한 모양이네요. 그러니까..."
성함이 어떻게 된다고 하셨죠? 너는 또 그렇게 말했다.
네 안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몇 번이고 되풀이하며 곱씹고 싶지 않았다. 네 안에서 내가 매 순간 별이 태어나고 사라지는 수 만큼 지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차는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너는 네 앞에 놓인 찻잔의 존재마저 잊은 듯했다.
"클리브 스테플, 이름이란 게 중요할까?"
"예? 무슨 그런 당연한 말씀을. 이름을 모르면 부를 수가 없잖습니까. 기억도 못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