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로맨스코미디, 다무루이
LN
2019. 3. 15. 15:51
전에 커미션 작업했던 캠퍼스물 다무루이
쪼끔 비현실적인 부분 있음
로맨스코미디
Written by. 나찰
For. 한비님
비어 있던 옆자리 의자가 덜컹 소리를 냈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면서도 이제는 대충 누구인지 짐작이 갔다.
"또 혼자 먹고 있군."
그게 도대체 교수님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라고 하기에 루이스는 좀 지나칠 정도로 착실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오늘 점심도 자의와 전혀 관계없이 전공 교수와 나란히 앉아 학식을 먹기로 타협한 것이었다.
옆에 앉은 남자는 통상적인 교수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었다. 신임인가 싶을 만큼 젊었고, 외모에 비해 꽤 노련했고, 어쨌든 잘생긴 얼굴에 큰 키, 무뚝뚝한 성격으로 학교에서 인기가 제법 있는 교수였다. 그러나 루이스에게는 화제의 교수 홀든도 그저 전공 교수님에 불과했다. 그 성격 덕에 루이스는 소위 아싸였는데, 언제부터인가 학교 안에서 돌아다니다 보면 이렇게 자주 그와 마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이 루이스의 기억으로는 아마 두 달째였다.
오늘 학식 점심 메뉴는 돈까스, 스파게티 조금, 사과 주스 한 팩. 식판을 싹 비우고 사과 주스에 빨대를 꽂아 쭉쭉 빨며 나란히 나오는 남자 둘이란 생각보다 심란한 광경이었다. 루이스는 별 생각 없어 보이는 교수를 옆눈으로 힐끔 쳐다보았다.
"교수님."
"왜 그러나."
"저기..."
"할 말이 있으면 똑바로 말하도록."
"언제까지 따라오실 거예요?"
말하라고 해서 말했더니, 이번에는 노려보는 듯 그의 시선이 얼굴에 날아와 따끔따끔하게 꽂혔다. 뭐 어쩌라고, 그럼. 이 다음에 강의도 있고 시험 공부도 하러 가야 하고 할 게 산더미 같은데, 어딜 가나 눈길을 끄는 이 사람과 같이 다닐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도 아마 할 일이 많을 테고. 그런데 도대체 왜 굳이 옆자리에 붙박인 듯 꼼짝을 않냐는 거지. 루이스는 그의 말끔한 얼굴에 대고 대충 그런, 지금의 심정을 쏟아내고 싶었지만 그랬다가는 다 된 성적에 C를 뿌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저 입을 도로 꾹 다물었다. 교수 역시 아무 말이 없었다. 뭘 그렇게 쳐다봐. 묵묵한 눈길에 지지 않고 시선을 맞추는 것만이 루이스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었다.
"... 교수님?"
"... 안 그래도 지금 강의가 있어 가려고 했다. 그리고, 자네를 따라간 게 아니라는 것은 알아 뒀으면 좋겠군."
아, 그러시구나.
그러고 넘어갈 만큼 겉으로 만만해 보였을지 모를 일이지만, 루이스는 사실 아주 성실해 보이는 얼굴과 속이 조금 많이 달랐다. 굳이 말하자면 하고 싶은 말을 속에 쌓아두는 편이라, 이럴 때는 과제 때문에 날밤을 사흘이나 새고 뜨거운 커피를 빈속에 들이부었을 때처럼 부글부글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역시나 아무 말도 못 한 루이스는 알았다고 끄덕이며, 그가 저만치 저벅저벅 당당히 멀어지는 것을 미간을 찌푸리며 쳐다보았다.
"교수님?"
옆자리에 순순히 타는 학과생을 쳐다보며, 교수 다이무스 홀든은 잠깐 이 순진한 것이 어떻게 그 흔한 연애 한 번 없이 지냈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사촌이라는 카리나가 자주 찾아와 그녀와 사귄다는 헛소문이 돌기는 했었지만.
"자료는 가져왔나?"
"네."
"그럼 가지."
"어딜요?"
"점심 안 먹은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도대체 그걸 어떻게 안 거야, 하듯 쳐다보는 루이스의 시선은 언제나 그렇듯 모르는 척 하고 시동을 걸었다. 식당에 예약해 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자잘한 설명은 가서 하는 것으로 하고.
다이무스는 루이스의 표정이 변하는 것이 꽤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차에 탔을 때 의아한 표정, 아무 설명 없이 식당으로 향했을 때의 황당한 표정, 역시나 아무 말 없이 식당으로 끌고 들어가 정해둔 자리에 앉아 점심으로 먹기에는 아주 비싼 풀코스 요리를 마주 대했을 때의 경악한 표정, 먹으면서 이게 얼마인지 속으로 머리를 굴리고 있는 지금의 빤한 표정까지, 어찌나 심심할 틈 없게 해 주는지.
루이스는 먹으면서도 연신 눈을 굴려댔다. 접시가 하나 나올 때마다 머릿속으로 주판을 튕기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았다. 포크를 멈추지 않고 거침없이 먹으면서도 그의 표정을 뭐 재밌는 거라도 구경하듯 쳐다본 다이무스는, 그가 메인 디시를 다 비우고 디저트를 기다리면서 참다 못해 입을 열 때까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저기, 교수님."
"왜."
"왜냐니.. 그건 제가 할 말인데요. 왜 그렇게 자꾸 쳐다보시는 겁니까?"
"내 눈으로 내가 보겠다는데 뭐 불만 있나."
루이스는 잠깐 동안, 너무 유치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 그리고 갑자기 왜 이런 비싼 곳으로.. 아니, 그 전에 왜 갑자기 점심을 또 같이 먹는 건데요?"
"첫째는 자네가 점심을 아직 안 먹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갑자기가 아니라 일주일 전부터 예약해 두었던 곳이기 때문이지."
"..."
그리고 루이스는, 그런 걸 물어본 게 아니잖아, 라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지었다.
대부분의 일에 눈치가 아주 둔한 것이 루이스였지만 아무리 그래도 설명 없이 이만한 식당에서의 식사는 좀 부담스러운 모양이었다. 물론 아주 잘 먹긴 했지만. 다이무스는 이제야, 좀 설명을 해 주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루이스."
"네?"
"식사, 어땠나?"
"맛있었어요, 굉장히. 이거 엄청 비싼 거죠? 점심인데 이렇게 호화롭게 먹다니..."
한 달 알바비로도 풀코스 요리 값에 못 미칠 것 같다고 루이스가 중얼거린 것도 같았다.
"그럼 됐다. 자네보고 계산하라 하지는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교수님이 다 내시려구요? 아니, 저 지금은 좀 그렇지만 못 내지는 않는데..."
"아는 사람이 하는 곳인데, 이런 곳에 혼자 오기는 뭐하지 않나. 그래서 친한 학과생을 데려온 거라고 생각해라."
"아... 그러시구나."
다이무스는 웃음이 날 뻔한 것을 겨우 참았다. 이렇게 약간 멍청한 얼굴로, 얼른 이해는 안 됐지만 대충 머릿속에 구겨넣어 이해한 척 하는 루이스의 표정이 아주 귀여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루이스의 그런 표정을 굉장히 좋아했고, 강의 중에도 종종 보이는 표정이라 가끔씩 이런 화법을 사용하고는 했다. 장소까지 동원한 건 조금 욕심을 낸 것이고.
띨띨해 보이는 표정을 감상하는 참에 디저트로 주문한 커피와 아이스크림이 나왔다. 안 그렇게 생겨서는 단 것을 꽤 좋아한단 말이지. 작은 스푼으로 아이스크림을 조금씩 떠 녹여 먹는 루이스는 마치 다람쥐 같았다.
"맛있나?"
"네? 네. 여긴 다 맛있네요."
"다행이군."
"교수님도 드릴까요?"
"뭐?"
그러면서 스푼 가득 하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떠 내미는 것에, 다이무스는 잠시 당혹감을 느꼈다. 몹시 환영할 일이긴 하지만, 좋다고 덥썩 먹기는 좀 그렇고. 속으로 열심히 고민하던 중에 고개를 갸웃한 루이스가 스푼을 거둬 제 입 안으로 쏙 밀어넣었다. 다이무스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고, 입을 아 하고 벌렸다.
"...?"
"안 주나. 준다며."
"... 아, 네."
다시 내밀어진 작은 스푼을 입술로 물어 위에 얹힌 아이스크림을 끌어당겼다. 혀 위에 올라오자마자 녹아 버리는 달콤한 맛은 채 열을 세기도 전에 목을 타고 넘어가 버렸다. 잔을 들어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그는, 도무지 이렇게 조금만 먹어서는 맛을 알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교수씩이나 되어서 제자의 아이스크림을 뺏어먹을 수도 없고. 그래도 맛있냐고 웃으며 묻는 루이스에게는 예의상 마주 웃으며 끄덕여 주었다.
"루이스."
"네."
"이번 과제, 자네는 다음주 금요일에 제출하도록."
"네? 그치만 다음주 월요일까지 무조건 내라고 하셨잖아요."
"물론 그냥은 아니지."
어리둥절한 표정의 그에게, 다이무스는 가방에서 두툼한 서류철 하나를 꺼내 주었다.
"이 자료까지 참고해서, 처음 제시한 분량의 두 배로."
"... 왜 저만..."
"그건 제출하면 가르쳐주도록 하겠다. 다음주 금요일 저녁 8시, 리버포드 시네마 앞에서 만나지. 지각하면 감점이다."
천천히 해라.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격려를 한 다이무스는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일어났다. 저번에 학생식당에서 같이 점심을 먹었을 때 영 표정이 좋지 않아 데리고 나왔더니 제법 귀여운 얼굴도 보고, 다음 약속도 얻어내고. 그야말로 일석이조였다.
늘 학생식당이나 편의점에서 점심을 때운다는 것쯤은 이제 다 꿰고 있었다. 주변 탐문을 하려다가 우연히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보고 점심을 안 먹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이라는 건 진짜였지만 예약은 바로 직전 사정사정을 해서 한 것이었다.
영화는 뭘로 예매할까. 또 다른 학과생들에게 루이스가 무슨 영화를 좋아하는지 물어볼까. 드물게 들뜬 채, 그는 식당을 나섰다.
"많이 기다렸나?"
"아뇨, 방금 왔어요."
원래 이러는 건지, 루이스는 30분 전에 왔으면서 태연히 고개를 저었다. 다이무스는 혼자 너무 들떴나, 하고 잠깐 생각했다. 루이스에게 그런 눈치를 바란 것은 아니었고, 둔한 점을 좋아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평소 학교 갈 때 입고 오는 잿빛 후드를 그대로 뒤집어쓰고 온 것은 역시 좀. 그에 비해 다이무스는 어디 세미나라도 가는 듯 수트를 잘 차려입고 머리까지 단정히 만진 채였다. 낮에 강의를 끝내고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와 새로 샤워를 하고 어제 새벽까지 걸려 고른 옷을 입고 머리를 만지고, 아무튼 일련의 과정을 보는 나머지 두 동생들의 시선이 따끔따끔 느껴질 정도로 열심이었다.
형, 데이트라도 가는 거야?
큰형이 데이트는 무슨, 생각을 해 봐, 선자리도 죄다 찼잖아?
요새 좀 이상한데. 툭하면 실실 웃고. 재수 없는 표정이야.
그건 그래. 어라, 진짜 데이트? 작은형, 우리 미행이나 해볼까!
미행은 너무 저열하다, 이글. 차라리 사람을 시키지.
둘 다 똑같다. 따라와서 훼방을 놓았다간 집에서 내쫓아버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다이무스는 누가 쫓아올세라 차를 몰아 약속장소로 나왔다. 물론 한 시간이나 일찍. 카페에 앉아 기다리려고 들어갔는데, 약속 시간이 아직 멀었는데도 루이스가 나오는 것이 보여 시간에 딱 맞게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이었다.
"일단 들어가지.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네?"
"팝콘은 좋아하나?"
"네, 뭐."
팝콘 라지 사이즈와 콜라 라지 하나씩을 루이스의 품에 안겨주고, 전날 예매해 두었던 멜로영화 표를 챙겨 상영관 안으로 들어섰다. 좌석에 나란히 앉자 마침 안전사고 대비 안내가 나오고 있었다. 늦지는 않았군. 안심하는데 옆에서 루이스가 옷깃을 잡아당겼다.
"교수님."
"왜."
"영화는 갑자기 왜..."
"흠, 액션이 더 좋나?"
"아니, 그런 게 아니라."
"그럼 됐다."
되긴 뭐가 돼, 하는 시선이 얼굴에 콕콕 박히는 것이 노골적으로 느껴졌지만 다이무스는 모르는 척 스크린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손으로는 루이스가 안고 있는 팝콘을 집어 먹으면서.
조명이 꺼지고 천천히 배경음악이 흘러나왔다. 포기한 건지 루이스도 영화에 집중하기 시작하는 것이 희미하게 보였다.
"루이스, 그만 울어라."
"아니.. 어떻게, 흑... 그걸 보고 안 울 수가 있어요..."
"알았으니까."
"교수님은 감성이 메마른 게 틀림없어..."
루이스는 영화가 끝난 후 30분 동안 손수건이 푹 젖도록 울고 있었다. 오히려 감흥 없어 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의 등을 토닥여 주는 다이무스의 손이 긴장으로 가늘게 떨렸다.
이 영화를 보고 다이무스 홀든이 안 울었다고 하면 이글과 벨져가 뒤집어지도록 놀라지 않을까. 그러지 못한 이유는 한 가지였다. 영화를 보는 루이스를 보고 있었기 때문에. 눈을 도록도록 굴리고, 영화의 흐름에 따라 표정이 수시로 바뀌고, 중간 중간 팝콘도 집어먹고 콜라도 마시고, 클라이막스를 지나 엔딩 장면이 나오자 눈물이 고이다 끝내 울어버리는 것이 영화보다 더 볼만했다. 그러니 영화를 제대로 봤을 리가 없지.
사실, 영화를 볼 때도 지금도 당장 손대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것이라 긴장이 풀릴 새가 없었다.
"이제 좀 괜찮나?"
"네... 죄송해요..."
"신경 쓰지 마라. 재밌게 봤다면 다행이지."
"네... 아."
"...?"
무언가 잊고 있던 걸 떠올렸는지, 루이스가 메고 있던 가방을 뒤적여 클립 두 개로 묶은 종이뭉치를 내밀었다.
"이게 무슨... 아."
"과제요. 하느라 죽을 뻔 했어요. 무슨 자료가 그렇게 많아요?"
다이무스는 그제야, 이 약속의 목적이 과제 제출이라는 것을 흐물흐물한 머릿속에서 겨우 기억해냈다. 리포트 표지에는 단정한 폰트로 무어라고 적혀 있었지만 글자가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 그래, 수고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시간이 늦어서."
아우, 눈 쓰려. 작게 중얼거리며 붉어진 눈가를 문지른 루이스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정말로 그것 외에는 아무 용건도 없었다는 듯이.
"루이스, 너 큰형이랑 영화 봤다며?"
"그건 어떻게 알았어?"
"다 아는 수가 있지. 그래서?"
"그래서라니?"
"이 자식... 데이트를 갔으면 뭐 감상이 있을 거 아니,"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라, 이글."
머리 위에서 들린 소리에 루이스는 고개를 들었다. 다이무스는 저를 흘끗 보더니 옆에 앉은 이글의 머리를 쥐어박고, 맞은편으로 가 앉았다. 어라, 오늘은 옆자리가 아니네.
"아, 왜 때려!"
"떠들지 말고 다 먹었으면 나가라. 과제 밀렸다고 하지 않았나?"
"그런 건 안 내도 돼."
"또 학고를 받았다간 카드 다 끊을 거다. 선배한테 너라고 하는 것도 고치라고 했잖나."
"루이스가 뭔 선배야? 거참, 애인 생기니까 이제 하나뿐인 동생은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동생은 너 말고 하나 더 있다."
"에라이."
애인? 형제의 대화에서 루이스는 귀를 쫑긋했다. 결국 다이무스의 등살에 못이긴 이글이 루이스의 어깨를 툭 치며 일어났다. 잘 해봐. 그러고 가는데, 대체 뭘 잘 하라는 건지. 고개를 갸웃하다 맞은편의 그를 힐끔 쳐다보았다.
"..."
"저번 주, 집에는 잘 들어갔나."
"아, 네."
"다행이군."
저번 주 금요일, 그와 영화를 봤다. 전날부터 괜히 들떠서는 새벽까지 옷을 고르다가 늦잠을 자 오전강의에 지각을 했다. 시간이 없어 대충 주워입고 나온 후드를 집에 들러 갈아입을 틈이 없었다. 결국 후줄근한 채로 쓸데없이 30분이나 일찍 약속 장소로 갔다. 그는 어디 파티라도 가는 사람 같았다. 같은 남자로서 좀 분하기도 하고, 제 옷차림이 부끄럽기도 했지만, 결국 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어 일부러 시선을 피했다. 과제를 제출하러 간 것이었는데 뜬금없이 나란히 앉아 멜로 영화를 봤고, 무척 감동적인 내용이라 그가 빌려준 손수건이 온통 젖도록 울었었다. 울면 못생겨 보인다는 카리나의 말이 기억에 콕 박혀 있던 터라, 그 뒤로 그런 얼굴을 보인 것이 좀 민망해져서 서둘러 가려다가 과제 내는 것도 잊을 뻔 했지. 그가 그 날 저를 웃긴 얼굴로 우는 놈이라고 생각했으면 어쩌나 하는 것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신경 쓰였다. 이렇게 보니 그런 건 전혀 안중에도 없어 보이지만.
"저기."
"왜."
"... 애인... 있으셨어요?"
"..."
아니, 이런 걸 물어보려던 게 아니었는데. 물어놓고도 당황해 루이스는 눈을 데굴 굴리다, 애꿎은 밥만 퍼 입에 밀어넣었다. 괜히 말해가지고. 이글이 그런 말을 하고 가 버려서 신경 쓰였잖아. 도대체 왜 내가 그런 걸 신경 쓰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는 한참이나 루이스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드물게, 아주 드물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이제 곧 생길 예정이지."
"... 아, 그러시구나."
얼마나 좋으면 저 목석같은 사람이 웃을까. 가라앉는 기분에 작게 고개를 주억거리는데 그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네?"
"자네, 이번에 D로 확정이야."
"... 네? 제가요? 왜요?"
"궁금하면 재수강하든가."
교수 다이무스 홀든은 몹시 기분 좋아 보이는 표정으로, 오늘의 후식인 바나나 우유에 빨대를 꽂았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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