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

간파, 바레데샹

LN 2019. 5. 29. 21:57

 

과거날조있는 유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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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저렇게 쳐다본다.

뭐 어떻다는 건 아니다. 그냥 자꾸 티가 나게 쳐다보니까 아무래도 신경이 쓰이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어디를 보고 있는지 시선이 닿는 곳을 낱낱이 알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바라보는데 모르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을까.

참다못해 눈을 흘긋 그 애 쪽으로 향해주면 순간적으로 눈길이 마주치고, 그리고 나서는 그 애가 화들짝 놀라 쑥스러운 듯 고개를 돌려버린다. 그러다가도 슬그머니 시선이 이쪽으로 다시 돌아온다. 상처투성이인 뺨에 옅게 붉은 기가 맴돈다. 거칠한 입술에 웃음이 뜰 듯 말 듯이 입꼬리가 움찔거리는 것도 다 보인다. 얼굴에 써 놓은 것 같다. 좋아 죽겠다고. 내가 너무 좋다고.

 

"히카르도."

"어, 어어, 왜?"

"너도 공부할래?"

"어? 내가?"

"왜, 싫어?"

"싫, 기보다는... 난 너처럼 똑똑하지 않으니까."

 

얼굴에처럼 상처가 가득한 손이 꼼질거린다. 짧다 못해 저래가지고서 아프지 않으면 다행일 만큼 바짝 깎은 손톱이 뭉툭하다. 그 손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아무렇게 이쪽으로 끌어와 손끝을 쓸어 보았다. 내게 잡힌 손목이 움찔 튄다, 그러나 벗어나지는 않은 채 얌전히 내 손아귀 안에서 머무를 뿐이다. 안 봐도 안다. 그 애의 얼굴이 지금은 조금 전보다 훨씬 더 붉어져 있다는 것을. 내겐 마음을 읽는 능력 같은 건 없는데도 그 애에게서 좋아한다는 말이 들려오는 것만 같다.

차라리 자의식 과잉이면 좋으련만, 유감스럽게도 그 애가 날 좋아한다는 건 사실이다. 그치만 딱히 어쩌고 싶다는 것도, 싫거나 좋거나 어떤 감정이 든다는 것도 아니다. 그런 건 다 소용없는 일이니까. 오늘은 이렇게 책을 읽고 공부를 하고 날 좋아하는 애의 손을 선심 써 잡아줘도 내일이면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게 마피아라는 거라고 그랬다. 아마 그 애도 똑같은 말을 들었을 것이다.

나로서는, 날 좋아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는 것이 그 애에게 해줄 수 있는 최대의 선의인 셈이다.

 

"까미유?"

"너, 손 이러면 안 아파?"

"별로..."

"아픈 거 참는다고 아무도 안 알아줘. 자기가 티 내고 그래야 하는 거지. 다른 건 잘 그러면서 넌 꼭 아프면 얘기 안 하더라."

"응? 어, ... 안 그럴게."

 

내가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는 표가 난다. 거봐, 이렇게 아무거나 속이 훤히 다 드러나 보이는데. 얼마 전에는 독감에 걸렸어도 아무 말 않고 있다가 의무실로 갔고, 아저씨들을 따라 현장에 나갔을 때 배를 찔려 돌아와 놓고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아 결국 내가 반딧불을 붙여 줬었다. 아, 그래. 그 때, 빛을 내며 날아다니는 반딧불들을 보면서 얼마나 바보같이 기쁜 얼굴로 웃던지, 제 얼굴이 다 녹빛으로 물들 만큼 반딧불을 많이 불러야 하는 상처였는데도. 멍청이.

이번엔 내가 깎으라고 할 때까지 깎지 마, 물어뜯지도 말고 어디 부딪쳐서 안 깨지게 잘 간수해. 잔소리를 조금 하면서 손을 놓아준다. 놓여난 손을 가져간 그 애는 내 손이 닿았던 자리들을 하나하나 쓸어본다. 내가 눈앞에서 쳐다보고 있는데 그건 또 아랑곳하지도 않는지 그 찰나의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기라도 할 셈인 표정이다.

그러고보면 그 애에게서 여러 가지 이해 못 할 것들 중에, 딱 한 가지 가장 이해가 안 되는 게 있는데. 이미 마저 읽기는 틀린 책을 덮어버리며 그 애를 부른다. 히카르도. 그 애가 내 부름에 나를 바라보지 않을 때는 없다. 내가 부르면 그게 언제라도 무엇을 하던 중이라도 내게로 향하고는 했다. 그렇게 하는 게 좋은 모양이었다. 나를 위해서? 아니면 자기만족, 어쩌면 날 동정해서. 명백히 틀린 선택지가 떠오르고 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직 어른은 아니지만, 사람은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다고 적혀 있었으니까 어쨌든 난 그런 사람으로 자랄 거다. 그럼 그 애도 지금과 같은 사람이 되는 걸까.

 

"있잖아, 궁금한 게 있어."

"뭔데?"

"넌 내가 왜 좋아?"

"어? ... 응?"

"너, 날 좋아하잖아."

"그, 그게... 아니, ... 맞긴 한데..."

"괜찮아, 말해 봐."

 

그 애는 한참을 망설인다. 처음엔 어떻게 알았나 싶어 당황한 얼굴이다가 그 다음에는 부끄러운지 미간을 좁히며 얼굴을 붉히고 시선을 이리저리 둘 곳을 못 찾다가 그리고는 끝내 다시 나를 바라보며 우물거리던 입술을 연다.

 

"까미유 넌... 나한테 특별한 사람이야. 그냥, 이유는 없어."

 

미안해, 소설에서처럼 더 멋진 말을 해 줘야 하는데. 쑥스러워하며 그렇게 덧붙이는 그 애는 어쩐지 평소와는 달라 보였다. 볼품없이 아무렇게나 자란 머리칼과 상처가 없는 곳이 더 드문 몸 여기저기, 형편없을 만큼 새빨갛게 물든 목덜미와 귓불, 내게는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유순한 눈매. 그 애가 원래 이런 인상이었나? 이렇게, 이렇게나.

아.

 

"까미유, 괜찮아? 저기... 싫으면 이제 안 좋아하게... 되도록 해 볼게. 아마도. 말 안 하려고 했는데."

 

더듬더듬 말을 이어가는 그 애의 모습이 겨우 머릿속에 드는 듯하다. 나는 내가 어떤 표정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애가 쩔쩔매는 걸 보면 어지간히도 질색이라는 얼굴인가봐. 맞아, 그 말대로지. 그 애가 지금 이대로 날 좋아하는 사람인 채로 자라 어른이 되어서도 내 옆에 있어주길 바라는 생각이 든다는 게 싫어서 견딜 수 없다.

난 너를 좋아하나봐. 그런데 어떡하지, 아마 내가 네게 그걸 이야기하는 날은 평생 오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이 다음에 커서 어른이 되면 이 순간을 이렇게 회상할 것이다.

끔찍한 첫사랑의 시작이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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